감성이 살아있던 1990년대. 지금 다시 꺼내봐도 놀라울 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한국영화의 매력, 그 이유를 탐색해봤습니다.
1990년대는 한국 영화의 숨겨진 황금기였습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그늘 속에서도, 독창적인 감성과 삶의 온기를 담은 작품들이 조용히 빛났죠. 기술은 부족했지만, 이야기는 깊었고, 사람 냄새는 짙었습니다. 이제 다시 돌아본 90년대 영화, 왜 지금 더 재밌게 느껴지는 걸까요?
진짜 ‘사람’ 이야기였다
지금의 영화처럼 과장된 설정이나 자극적인 전개 없이도, 90년대 영화는 충분히 강렬했습니다. 인물의 말투, 표정, 거리 풍경까지 모두가 진짜였죠. 《투캅스》의 안성기·박중훈 콤비는 영화가 아닌 다큐처럼 느껴졌고, 《결혼 이야기》는 당시 신혼 부부들의 일상을 소박하게 담아냈습니다.
투캅스 영화를 보면, 당시에 비리경찰에 대해서 마음이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코믹한 영상을 통해서 사회고발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성기 배우의 연기는 고래사냥부터 코믹하면서 인간미가 느껴져서 참 좋았습니다. 박중훈 배우의 연기 또한 탁월했지요. 지금은 두 배우 모두 한국영화의 기둥이 되어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아쉬운 것은 안성기 배우가 건강이 안 좋아서 투병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서 충무로의 기둥으로 살아오신 분, 꼭 완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돌이켜 보니, 90년대 영화는 참 인간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냄새나는 시설,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진심이 주는 울림
《서편제》 속 송화의 판소리, 《고래사냥》에서 청춘의 방황, 《하얀 전쟁》의 전쟁 후유증. 90년대 영화는 감정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조용히, 천천히, 진심으로 다가왔죠. 그래서인지, 나이를 먹은 지금 더 깊이 이해되고, 더 오래 남습니다. 영화 서편제는 롱테이크 영상의 끝판왕이었죠. 그토록 긴 영상을 지금까지 본 기억이 있을까 싶습니다. 숨을 못 쉴 정도로 길었던 영상, 감독의 고집도 대단하지 않나요. 그정도 길이가 되는 영상을 내보내다니.
하얀전쟁은 베트남 전쟁을 대신 느껴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월남전에 파병간 한국병사들은 밀림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남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건져온 사람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그만큼 좋은 영화란 뜻이겠죠.
피카디리 극장
청계천 수표교 아래 아이들의 삶, 단성사 앞 피카디리 극장의 인파, 기차가 천천히 들어오던 시골역 플랫폼. 이제는 사라진 그 시절의 풍경이 영화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90년대 한국영화는 단순한 극이 아니라, 시간을 붙잡아 둔 기억의 저장소였습니다.
얼마전 종로에 가보니, 피카디리, 단성사 모두 사라지고 큰 빌딩이 들어서있더군요.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의 흔적은 사라지고, 영화에 관한 사진들이 그 흔적을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종로통에 지나는 수 많은 사람들 중에서 피카디리, 단성사 추억을 가지신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점점 사라져가는 영화의 흔적들, 아쉽습니다.
배우가 장르였던 시절
강수연, 박중훈, 안성기. 이름만으로도 영화의 완성도를 믿을 수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들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인생을 보여주는 듯했고, 진정성 있는 연출과 만나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버린 강수연 배우. 참 아름답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습니다. 특히 1987년에 상영했던 철수와 미미의 청춘 스케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철수가 군대갈때, 입영열차에 달려와서 키스하는 장면, 농구 코드에서 청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 정말 청춘의 심볼 그 자체였던 배우였습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금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
당시엔 그냥 흥미로 봤던 영화들이, 이제는 나를 위로하는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결혼 이야기》의 갈등은 더 이상 남 이야기가 아니고, 《고래사냥》의 실연은 나의 오늘과 겹칩니다. 90년대 영화는 지금의 우리가 살아낸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빠른 영상과 자극적인 장면이 넘치는 오늘, 우리는 다시 ‘느림’과 ‘진심’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90년대 한국영화는 바로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죠. 추억을 넘어, 다시 꺼내보면 ‘지금’에 더 가까운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하루의 틈에서, 한 편의 영화를 꺼내보세요. 그 영화는 어쩌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 지난 세월 동안 본 영화를 떠올리니 기분이 묘합니다. 남은 세월은 잘 살아가고 싶습니다.